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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민 칼럼]【사회의 결을 짚다】도시를 사용하는 법 ③ : 휠체어는 출입구에서 멈춘다 - 턱은 여전히 휠체어 이동권의 가장 낮은 벽이자 가장 큰 장벽 - 고정 경사로 보수가 어렵다면, 간이경사로라도 의무화해야 - 외국은 오래된 건물도 경사로로 다시 연다
  • 기사등록 2025-08-12 14: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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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민 평론가는 미술사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으며, 감정예술 콘텐츠 기획 브랜드 RECENT LAB(리센트랩)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평론가 등단 이후 여러 매체에서 ‘조선시대에도 SNS가 있었다?’, ‘도박은 조선시대 왕권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등 다수의 미술사 평론 칼럼을 발표해왔다. 미술사 속 시대정신을 풀어내는 【미술로 보는 시사】를 연재 중이며, 【사회의 결을 짚다】는 미술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감정과 구조의 결을 함께 짚어보는 칼럼 코너이다. 청년의 삶, 일, 가족, 돌봄, 관계 등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사회적 장면들이 어떻게 어긋나고 있는지를 다루며, 숫자와 문장으론 가닿지 못하는 일상의 결에 질문을 던진다.

최정민 취재본부장/미술평론가



작은 턱 하나가 도시를 가로막는다. 휠체어는 그 턱 앞에서 멈춘다. 한 도시의 수준은 ‘가장 느리게 걷는 사람을 어디까지 배려하느냐’로 드러난다. 그리고 휠체어가 편히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된 경사로는 그 배려의 출발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휠체어를 ‘장애인 전용’으로 오해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일시적인 부상, 수술 후 회복, 고령에 의한 보행 불편, 몸이 불편한 어린아이, 유모차 이용 보호자 등 휠체어 사용자와 유사한 이동 약자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휠체어 사용자는 여전히 ‘예외적 존재’로 취급된다. 출입구의 턱, 엘리베이터 없는 역, 간이 경사로조차 없는 매장 앞에서, 휠체어는 멈춘다. 도시의 기본 설계가 이동권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축 건물에는 건축법에 따라 경사로 설치가 기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존 구축 건물에는 여전히 설치가 미비하다. 특히 오래된 상가나 식당, 약국, 생활 편의 시설 등은 구조적 한계로 인해 영구적인 경사로 설치가 어렵고, 이로 인해 휠체어 이용자의 접근이 차단되고 있다. 건축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에는 경사로 설치가 의무사항으로 명시되어 있으나, 1998년 이전에 지어진 기존 건축물의 경우 설치 의무가 적용되지 않아, 접근성 사각지대로 남는 경우가 많다. 2023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약 19만 개 시설 중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율은 89.2%, 적정 설치율은 79.2%였다. 하지만 이는 신축·증축된 건물 기준으로, 구건물이나 소규모 상점 등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즉, 도시 전반에는 여전히 간이 경사로조차 마련되지 않은 접근 불가능한 공간이 상당수 존재한다. ‘간단히 약국에 다녀오겠다’,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겠다’는 당연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고된 도전이다. 문제는 구조에 있고, 해결 역시 구조에서 시작해야 한다.

 

외국 사례는 다르다. 유럽과 북미 도시에서는 구 건물에도 경사로 설치가 보편화되어 있으며, 간이 경사로 비치 역시 기본적 시민 배려로 간주된다. 예컨대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버스 정차 시 휠체어 이용 승객이 있으면 버스 기사가 휠체어 전용 좌석을 정돈하고 경사 발판을 내리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승객 중 누구 하나 짜증을 내지 않는다. 이는 시민의식이 도시 구조와 나란히 자라났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영국 런던 호스 가즈 로드(Horse Guards Road)의 재무부 건물 출입구. 기존 계단을 보존하면서 대칭형 경사로를 설치한 모습 (출처: English Heritage, Easy Access to Historic Buildings, Annex C, p.12)


영국 체스터는 고대 성벽과 관광지를 보존하면서도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도시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영국 전역은 「Equality Act 2010」에 따라 기존 건물에도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합리적 조정’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이는 이동식 경사로 비치까지 포함된다.

 

한국도 이제 출발점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구 건물에 고정형 경사로 설치가 어렵다면, 최소한 이동식 간이 경사로를 비치하도록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도시 접근성 보장을 위한 국가적 책임이다. 이동식 간이 경사로는 필요할 때 꺼내어 쓸 수 있는 실용적 도구이며, 모든 사업장에 기본 장비로 보급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과 예산 편성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서울시 마포구가 무장애 상권 조성을 위해, 장애인 이용 편의를 높이는 '무장애 매장 인증제'(누구나 가게)는 시범사업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전국 확산을 전제로 한 정규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인증 매장에는 세제 감면, 온라인 홍보 우선 노출, 공공사업 우대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자발적 확산을 유도할 수 있다. 이동식 경사로의 보급 현황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지자체별 접근성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정책의 실효성을 평가·관리하는 체계 역시 마련되어야 한다. 작은 경사로 하나가 도시의 이동권을 얼마나 확장시키는지를 고려할 때, 이는 단순한 배려가 아닌 구조적 전환이다.

 

대중교통 접근성 개선 역시 병행되어야 한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리프트버스와 저상버스의 노선 확대는 물론, 휠체어 탑승 택시의 사전 예약 시스템을 표준화하고, 도심 외곽과 중심지를 연결하는 주요 구간에는 정기 운영을 보장해야 한다. 휠체어 이용자의 외출이 단발적 체험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국가가 실질적 운영과 비용을 보조해야 한다.

 

일부 시민들은 서울 간선버스 대부분이 이미 저상버스로 운영되고 있으며, 서울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설치율 또한 94%에 달해 뉴욕보다 훨씬 높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서울의 경사 많은 지형 특성상, 지선이나 마을버스까지 전면적으로 저상화하는 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형적 한계를 이유로 제도 확장의 필요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어려운 노선은 유지하되, 가능한 구간부터 이동권 서비스를 적극 도입하는 것이 옳다. ‘확장 가능한 곳부터 시작하는 점진적 접근’이 현실적이며, 이 역시 정책 의지에 달려 있다.

 

더불어, 저상버스를 제도적으로 도입했다고 해서 휠체어 이용자들의 탑승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저상버스를 운행 중인 한 기사에 따르면, “휠체어 승객을 만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설령 만나더라도 탑승 준비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고 한다. 혼잡 시간대에는 휠체어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고, 접이식 의자에 앉은 승객의 양해를 구해야 하며, 발판을 내리는 작업 자체도 여유 공간이 확보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탑승 자체가 부담스러운 구조에서, 휠체어 이용자가 실제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란 매우 어렵다.

 

즉, ‘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이동권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물리적 장비와 법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간, 시민의식, 운영 여건이라는 구조적 조건들이 함께 충족되어야 이동권은 실제로 작동한다. 휠체어가 저상버스를 탈 수 있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타고 다니는 이용자가 얼마나 되는가를 물어야 한다.

 

휠체어 사용자에게 필요한 것은 시혜적 동정이 아니라, 도시 구조에 대한 실제적 배려다. 그리고 이는 특정 계층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보행 약자에 대한 배려는 곧 미래의 나를 위한 준비다. 병원 퇴원 후 잠시 휠체어를 타는 사람, 무릎 수술을 한 부모님, 유모차를 끄는 보호자까지. 이동이 불편한 상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즉, 휠체어는 모두의 가능성 안에 있는 일상적 도구다.

 

도시 설계는 강자보다 약자를 중심에 놓을 때 건강해진다. 계단보다 경사로, 턱보다 평지, 안내보다 구조. 시민이 감당해야 할 인내심이 아니라, 도시가 먼저 준비해야 할 설계다. 휠체어가 편히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된 경사로는 도시의 배려 수준을 드러내는 최소 단위이며, 동시에 도시가 묻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시 안의 질서와 불편을 함께 짚어보는 연속 칼럼, <도시를 사용하는 법>의 세 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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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교육감-강숙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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