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기 산업안전취재본부장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안전사회 구축을 위한 전문가 모임 대표
최근 전국적으로 이어진 집중호우로 인해 우리 사회는 또다시 재난 대응의 민낯을 마주하게 되었다. 광주광역시에서는 주요 도로와 지하철이 침수되며 시민들의 이동이 사실상 마비되었고, 오산에서는 보강토 옹벽 붕괴로 차량이 매몰되어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러한 재난 속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의 대응 방식은 시민의 신뢰를 시험하는 시험대가 되었다.
광주광역시장 측은 “빗물받이 점검 등 대비를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폭우였다”며 재난의 책임을 자연 현상으로 돌리는 듯한 발언을 내놓았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 같은 시점에 도로 일부 침수는 있었지만 주요 대중교통망은 정상적으로 운행되었고, 시는 시민들에게 실시간 교통 정보를 제공하며 적극적인 우회 안내에 나섰다. 같은 폭우를 겪더라도 대응의 차이가 시민들의 피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과거 대구에서도 발생한 바 있다. 2022년 집중호우 당시 대구시는 저지대 통행을 사전에 제한하고, 시민들에게 SNS와 BIS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침수 위험을 공지하였다. 그 결과 인명 피해 없이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처럼 침수는 사전 정보 수집과 대응 체계만 갖춰진다면 충분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재난이다.
광주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지난 7월 18일 저녁, 필자가 서울에서 일정이 끝난 후 광주 송정역에 도착한 시민 수십 명은 열차 운행 중단과 지하철 마비로 이동 수단이 전혀 없는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BIS 시스템은 버스 도착을 안내했지만, 실상은 운행이 중단된 상태였다. 택시는 단 한 대도 호출되지 않았고, 40분 가까이 대기해도 교통편은 확보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개인의 불편을 넘어 방문객과 지역민 모두가 겪은 집단적 피해였다.
2023년 부산에서는 비슷한 상황에서도 시는 기초지자체와 협력해 ‘긴급 수송차량’을 배치했고, 침수 지역 주민들을 인근 안전 지역으로 이송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행정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광주광역시장은 과거에도 가뭄 상황에서 “화장실 변기에 벽돌을 넣으라”는 비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행정적 준비 부족을 드러낸 바 있다. 실제로 가뭄 당시 전북은 도수로를 통해 타 지역의 물을 공급받는 비상 계획을 시행했고, 충남은 해수담수화 시설 가동으로 상수도 대체 공급을 시작했다. 준비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의 격차는 결국 시민의 삶의 질로 이어진다.
지자체장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최전선에 서 있어야 한다. 상황실에 머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재난이 닥쳤을 때 시장은 직접 도로를 걷고, 하천을 확인하며 현장 중심의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현장을 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위험이 존재한다. 예컨대 일본은 재난 대응에서 단체장이 직접 현장에 나서는 ‘시찰 행정’을 정례화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재난 발생 시 시민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번 광주의 사례는 기후 재난이 아닌 행정 재난이었다. 지방자치의 본질은 시민을 위한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문제 해결에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단체장과 공무원들이 현장에 기반한 통찰과 적극적인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시대는 이미 ‘응급 대처’가 아니라 ‘예측과 준비’의 패러다임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아니라, ‘그래도 해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행정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