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기 산업안전취재본부장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
안전사회 구축을 위한 전문가 모임 대표
“건설현장 산업재해, 반복될 이유는 없다…실질적 개선이 필요할 때”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산업재해에 대한 정부의 책임과 대응을 강도 높게 주문하며, 기업의 인식 변화와 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특히 반복적인 사망 사고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표현하며, 그 심각성과 구조적 문제를 직시했다.
지난 국무회의는 이례적으로 생중계되었고, 국민은 각 부처 장관들의 토론을 직접 지켜보며 정부의 산업재해 예방 정책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통령은 중대재해처벌법의 형사처벌이 예방효과 측면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며,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다. 여기에 ESG 평가와 기업의 주가를 연계한 제재 방안까지 언급하며, 반복적인 산업재해 발생 기업에 대한 공개적 경고와 실질적 조치를 주문했다.
이러한 정책적 접근은 대기업의 경우 일정 부분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 특히 건설현장 중심의 중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여전히 높은 장벽이 존재한다. 인력과 예산 부족, 기술 적용의 어려움 등 현실적인 한계가 건설현장에서의 안전 강화에 장애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규모 건설현장에 안전정책이 효과적으로 이행되지 않는 데에는 다양한 현실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먼저, 일부 사업주들은 안전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며, 법적 책임보다는 비용 절감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안전조치는 형식적인 절차로 여겨지거나 최소한의 수준에서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경쟁 입찰 구조에서 공사를 저가로 수주하려는 관행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로 인해 안전예산이 축소되거나 배정조차 되지 않으며,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한 업체가 선정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현장 관리자 및 근로자에 대한 안전교육 역시 형식적으로 진행되거나 생략되는 경우가 있으며, 보호구 착용이나 안전수칙 준수와 같은 기본적인 안전행동조차 간과되는 현실이다.
중소규모 건설현장에는 대형 현장에 적용되는 안전관리 제도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사례도 많다. 전문적인 안전관리자를 채용할 수 있는 예산이나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워 안전관리 업무가 타 업무와 병행되거나 담당자 자체가 부재한 경우도 존재한다.
하도급 구조 또한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소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적절한 안전관리비를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있으며, 하청업체는 재정적 제약으로 인해 필요한 안전조치를 실행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법령 및 제도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낮은 중소기업은 안전정책의 이행방법 자체를 숙지하기 어려우며, 행정 절차의 복잡성 및 실무적 안내자료 부족으로 인해 정책의 실행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실정이다.
결국, 이러한 구조적 한계와 제도적 미비는 중소규모 건설현장의 안전 강화에 본질적인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단순한 제도 설계 차원을 넘어 현장 중심의 맞춤형 지원과 실행력 확보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행사 많지만, 성과는 글쎄?
2010년부터 2025년까지 언론에 보도된 건설안전 관련 공개 세미나는 약 400~500건에 달한다. 비공개 행사와 지역 단위 간담회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주제는 건설현장에서 안전사고를 감소하기 위한 스마트건설과 안전, AI 기술, ESG와 안전기술 등으로 다양하게 진화해 왔다.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안전관련 학회나 협회(60회 이상), 안전관련 공공기관(40회 이상), 건설안전 관련 협의회(30회 이상) 등이 있다.
특히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관련 세미나·포럼은 집중적으로 증가했으며, 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 세미나(2022),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세미나(2023), 시행 2주년 특별세미나(2024), LAW 포럼(2025) 등 다양한 형태의 논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문제는 실효성이다. 많은 행사들이 정책 논의와 실무 교육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건설현장에서의 안전 개선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소 건설업체에서는 현실 적용성이 낮은 제도와 기술에 대한 접근성 부족으로 인해 격차가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이젠 ‘보여주기식 행사’를 넘어서야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 해결책은 이제 단발성 행사나 홍보성 간담회를 넘어서야 한다. 각종 세미나와 포럼이 제도 개선의 촉매제가 되기 위해서는 그 결과를 실질적 현장 기술로 연결시키는 구조적 장치가 필요하다. 데이터 기반 평가, 정책 유효성 검증, 그리고 지속적인 개선 노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이번 주 금요일에도 또 하나의 건설안전 세미나가 예정돼 있다. 단지 '개최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무엇을 바꾸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할 때다. 산업재해 예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