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민 취재본부장
최정민 취재본부장/미술평론가
반려견 인구 천만 시대, 개는 더 이상 ‘집 안의 동물’이 아니다. 삶의 동반자로서, 또 도시의 일상 속 구성원으로 존재하고 있다. 강아지 전용 유치원, 반려견 전용 카페, 생일 기념 사진관 예약까지, 반려견은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안에 깊이 들어와 있다. 사람들은 이제 ‘견주’보다 ‘반려인’이라는 표현을 더 자연스럽게 쓰며, 이웃과 함께 개의 간식을 나누고, 매일 산책을 나서며 일상을 공유한다. 반려견은 분명 가족이고, 또 이 도시의 일원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일원과 우리가 공유하는 공간은, 과연 준비되어 있을까.
누군가는 개에게 말을 걸고, 누군가는 피하듯 지나간다. 반려견을 대하는 태도는 제각각이지만, 그 차이를 조정하고 조율하는 책임은 결국 도시의 몫이다. ‘애견인은 배려해야 하고, 비애견인은 이해해야 한다’는 도식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갈등은 배설 문제다. 일부 견주는 여전히 길 위에 배설물을 남기고 자리를 뜬다. 국민권익위원회 분석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반려동물 관련 민원이 36,813건 접수되었고, 월평균 민원 건수는 2025년 현재 1,741건으로 전년 대비 거의 두 배 증가했다. 주요 유형은 목줄 미착용, 배설물 미수거, 동물 학대 신고 요구 등이었으며, 이는 단순한 일회성 문제가 아닌 반복적 공공 갈등의 징후이다.
“이 곳에 반려견 소변 보게 하지 마세요.”
시민이 자발적으로 붙인 경고문. 그러나 책임의 경계는 여전히 모호하다. 필자 촬영
사진 속 장소에는 ‘이 곳에 반려견 소변 보게 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기대기도 하고 앉기도 하는 곳입니다. 특히 아이들을 생각해 주세요.’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해당 골목은 이미 반려견들이 배설을 반복해 온 표식 지점, 일명 '핫스팟'이 된 것이다. 누구도 항의하지 않고, 누구도 제지하지 않지만 불쾌함은 남는다. 이것은 개인의 도덕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라면 명백한 위법으로 간주될 행동도, 반려견의 경우에는 책임 주체가 모호한 회색지대로 처리된다. 이렇게 경계가 불분명한 상황은 도심 위생의 구조를 서서히 약화시키고 있다.
비반려인의 감정도 누적된다. 출근길마다 반복적으로 소변 자국이 있는 벽 앞과 치우지 않은 대변을 피해 지나는 사람, 산책 중 갑작스레 짖는 강아지에 놀란 아이와 부모, “우리 애는 안 물어요”라는 말만 남긴 견주의 태도. 이 장면들은 가볍지만 반복된다. 그리고 반복은 무시를 넘어 사회적 피로로 이어진다. 어느 날, 아파트 단지 산책로에서 한 견주가 반려견의 배설물을 수거하지 않고 풀숲에 던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유를 묻자 그는 “거름이 되잖아요”라고 답했다. 아이들이 오가는 길 옆,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여겼다.
물론 많은 견주들은 위생과 매너를 지키며 산책을 즐긴다. 이 모든 문제는 극소수의 반복적 행동에서 비롯되지만, 그 피해는 다수의 일상에 퍼진다. 민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예외가 아니라 도시가 그 반복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다른 예로는 입질이 있는 강아지를 다른 개에게 ‘인사시키는’ 행동도 문제다. 보호자 동의 없이 다가오거나, 목줄 없이 접근하는 경우는 소수지만 치명적이다. 그러나 이 역시 ‘강아지니까 괜찮다’는 인식으로 쉽게 묵인된다. 문제는 존재하지만, 누구도 선을 그어주지 않는다. 이 도시는 ‘공존의 방식’을 아직 정리하지 못한 상태다.
도시는 시민의 일상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반려견 시대의 일상은 더 이상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배설물이 쌓이는 특정 구역에는 소형 수거함을 일정 간격으로 설치하고, 산책로에는 배설 가능 구역을 시각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반려견의 대소변 문제는 단지 수거 여부를 넘어서, 이후의 흔적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까지 포함된 공공 에티켓의 문제다. 특히 강아지의 소변 자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악취, 얼룩, 위생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외국에서는 반려인이 생수병이나 물통을 들고 다니며 배뇨 후 바닥을 씻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도시가 공존을 준비한다면, 이처럼 작지만 실질적인 생활 매너 역시 캠페인과 안내를 통해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그러나 안내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복되는 위반 행위에는 벌금이나 제재 등 실효적 조치가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목줄을 착용하지 않은 반려견에 대한 단속 역시 안내 중심의 캠페인과 함께 추진돼야 한다. 중요한 건 행위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문제를 구조적으로 다룰 수 있는 도시의 준비다.
공존을 위한 안내와 제재는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구조를 함께 설계하는 방식이다. 서울 성동구는 일부 산책로에 분변 수거함을 설치하고, 주기적으로 수거하는 시스템을 시범 운영 중이다. 반면 서울 마포구는 난지한강공원에 반려동물 캠핑장과 함께 반려견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도입했지만, 운영 현황이나 이용 실적에 대한 공식 통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지속 가능성 역시 불투명한 상태다. 이처럼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그 성패는 시민의 참여와 실질적 활용에 달려 있다. 산책로 내 배설존의 위치와 구조는 현장 사용자들의 동선과 생활 패턴을 반영해 설계되어야 한다. 단순히 설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공감을 통해 자율적 관리와 책임이 함께 형성되어야 한다. 제도는 강제보다 수용 가능성이 중요하다.
갈등은 방치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불쾌함이 개인의 도덕 문제로 축소되는 순간, 도시의 책임은 흐려진다. 도시는 먼저 묻고 시작해야 한다. 왜 이 문제가 반복되는가. 그리고 어떤 구조로 이 문제를 다룰 것인가. 공존은 시민의 양심에 기대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도시가 먼저 선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공공을 ‘선한 시민’의 양심에만 맡겨선 안 된다. 갈등을 줄이는 일은 예절 교육이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과 개가 불편한 사람 모두,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존재한다. 그 시작은 분노도, 도덕도 아닌, 공간이다.
※ 이 글은 도시 안의 질서와 불편을 함께 짚어보는 연속 칼럼, <도시를 사용하는 법>의 두 번째 글입니다. ※ 글에 사용된 사진은 필자가 직접 촬영한 것으로, 특정인을 비방하거나 특정 지역을 지목하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밝힙니다. ※ 국민권익위원회 보도자료 「2022년 7월~2025년 6월 반려동물 민원 분석 결과」, 2025.07.25. 발표. 참조.